자기계발서의 장르 규칙
2015년 2월 2일
자기계발서의 장르 규칙 출처: 들뢰즈, 디젤매니아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노명우씨의 세상물정 사회학 이라는 책의 일부입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이라든가 루소의 “에밀” 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책이 있다. 저자의 이름을 듣자마자 조건반사처럼 책 제목이 떠오르는 이런 책들은, 제목이 어찌나 귀에 익은지 내용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할 정도이다. 하지만 정작 전문학자들을 제외하면, 이런 유명한 책들을 실제로 읽은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인지 유명세에 비해 이런 책들의 영향력은 대학 강의실을 벗어나기 힘들다.
반면 양서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일상의 상식적 판단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책들이 있다. 강의실에서 칸트가 언급될 때 졸고 있던 대학생도 도서관에서 기꺼이 대출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 책읽기와는 거리를 두던 직장인도 일부러 서점에 들르도록 만드는, 자본주의의 스테디셀러이자 이 시대의 베스트셀러인 이른바 ‘자기계발서’가 바로 그런 책이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갈수록 늘어가고, 금력 앞에서 권력도 맥을 못 추는 자본주의의 법칙이 확장되는 사회에서 금전적인 성공은 인생의 옵션이 아니라 정언명령과도 같다. 위인전에는 훌륭한 사람의 스토리가 담겨 있지만, 훌륭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과 동의어가 된 사회에서 위인전은 돈을 향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않는다.
전통사회 훌륭한 사람 / 금전적으로 성공한 사람
자본주의 훌륭한 사람 = 금전적으로 성공한 사람
그래서 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위인전을 아동문학으로 취급한다. 위인전을 읽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돈이 힘을, 그리고 그 힘이 제공하는 돈맛을 알게게 되면 위인전을 덮는다. 위인전을 덮은 어른들이 찾는 책, 그 책을 부르는 일반명사가 자기계발서이다.
성공에 목숨 거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자기계발서 출간 열풍도 멈출 줄 모른다. 인터넷 서점의 메인 페이지에도 대형 서점의 매데에도 자기계발서는 눈에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자기계발서가 빠진 목록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베스트셀러 순위의 단골 손님이다.
하지만 최신간인 자기계발서를 펼쳐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돌연 ‘데자뷰’현상에 빠져든다. 장르의 규칙을 설명하는 교과서처럼 줄거리가 진행되는 텔레비전 아침드라마 인 양, 신간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새로 나온 자기계발서는 하이틴 로맨스만큼이나 모범생처럼 장르의 관습을 충실히 지킨다
이 장르의 규칙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출간되자마자 순식간에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덴마크어로 번역되고 일본에서도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어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동력 구실을 했던 책이 있다. 1859년 새뮤얼 스마일즈가 쓴 자기계발서의 전설 “자조론”은 자기 계발서장르 규칙의 원조 격이다.
이후의 등장한 자기계발서들은 모두 “자조론”의 변주곡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자조론”은 자기계발서를 관통하는 장르 규칙의 원형을 만들어 냈다. 어느 자기계발서를 펼치는 볼 수 있는 표현과 메시지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좌절이 성공의 문”, 늘 자신을 준비시켜라”, “잡은 기회를 놓치지 마라”, “결심하라, 끝내 이룰 것이다”,”때를 놓치지 마라”, “굴하지 않는 의지력으로 평생의 꿈을 이루어라” 등등은 모두 스마일즈의 창작물이다.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생산 방식을 헨리포드의 이름을 따서 ‘포디즘’이라 명명하듯이, 자기계발 산업의 장르 규칙을 “스마일즈주의”라 명명해도 괜찮을 정도이다.
완성도만 보자면 “자조론”은 형편 없는 책이다. 하지만 “자조론”을 관통하는 자기계발서 장라의 규칙이 발휘하는 설득력은 체계의 취약함을 감춘다. “자조론” 은 논리적 완성도가 아니라 엄격한 장르 규칙 준수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한다.
장르의 규칙에 따르면, 이세상의 사람은 오직 두 종류로 구분된다. 한편에 누구나 부러워하는 사람이, 다른 한편에는 실패한 사람이 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과 이타적인 사람 같은 전통적인 인간 분류 체계 대신, 자기계발 장르의 규칙은 인간을 성공과 실패를 기준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눈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 사이에는 어떤 인간한적 공통 분모도 없다. 그들은 서로 다른 종이다. 둘 사이에는 어떤 교집합도 없고, 패자부활전은 어떤 경우에도 허용되지 않는다. 인생은 성공을 향한 한방 승부이다.
“자조론”은 성공한 사람들의 ‘만인보’이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이 책에서 소개되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한가지,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성공의 비밀은 ‘자조’에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큰 업적은 대개 평범한 수단과 자질 등을 활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온갖 관심사와 필요성, 의무와 함께 최고의 경험을 얻을 수 있는 풍부한 기회가 있다. 진정한 일꾼은 아무리 힘든 길을 걸어가도 노력을 통해 자기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충분한 여지를 발견한다. 행복의 길은 근면이라는 오래된 도로를 따라 뻗어 있다. 성실하고 끈기 있게 일하는 사람들은 늘 최고의 성공을 거두게 마련이다.
반복되는 성공 스토리를 듣고 있다 보면 독자는 저절로 스마일즈에게 간청하게 된다. “저도 성공하고 싶어요. 알려주세요 그 비밀을 제발.” 그 간청에 부합하듯 스마일즈는 독자에게 속삭인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아냈어요. 그리 어렵지 않아요. 당신도 할 수 있어요. 힘내세요. 누구나 할 수 있는 몇 가지 원칙만 지키세요. 그 원칙이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었어요.”
스마일즈가 찾아낸 성공의 비밀은 대단하지 않다. 그에 따르면 성공한 사람은 성실하다.
- 그 사람은 인내심이 많고 끈기가 있으며 목적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가는 불굴의 의지를 갖고 있다. 성공 요인은 오로지 성공한 사람의 자질이지, 그 사람이 처한 유리한 사회적 환경은 아니다. “행운의 여신은 종종 눈이 멀었다고 하지만 우리처럼 눈먼 것은 아니다. 잘 살펴보면 행운은 언제나 부지런한 사람들 편임을 알 수 있다. 마치 바람과 파도가 최고의 항해가 편을 들듯이 말이다. 이치나 사실을 밝혀내는 가장 쓸모 있는 도구는 상식, 관심, 몰입, 인내와 같은 평범한 자질들이다. 여기에 천재성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위대한 사람은 천재적인 능력을 그다지 신봉하지 않으며 평범한 성공인들과 마찬가지로 지혜롭고 끈기가 있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천재성을 노력의 힘으로 설명했고, 뷔퐁은 인내력이라고 했다.” 성공 요인이 전적으로 개인에게 귀속되듯이, 실패 요인 역시 실패한 사람들에게로 귀착된다. 성공한 사람에게 ‘근면’, ‘몰입’, ‘인내’ 등의 단어가 할당된다면, ‘게으름’,’산만함’등의 단어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에게 어울린다는 것이다.
- “자조론”은 성공과 실패를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하지 않는다는 자기계발 장르의 두 번째 규칙을 철저히 지킨다. 성공과 실패는 전적으로 개인의 능력에 따른 결과이다. 사회과학이 아프리카 저발전국에서 스티브 잡스가 등장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면, 자기계발서의 장르규칙에 따르면 그건 핑계다. 스티브 잡스는 사회환경 차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출현할 수 있다. 단 전제가 있다. 믿어야 한다. 믿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두가지 장르의 규칙을 지키면 자기계발서는 데자뷰로 가득한 내용이어도, 체계가 부족해도 독자들을 설득하는 힘에 관한 한 어느 논리적인 책보다 앞선다.
자기계발서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혁신을 강조하지만, 정작 그 혁신의 원칙을 장르의 규칙이라는 관습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스마일즈 이후 자기계발서의 장르 규칙은 변하지 않았다. 장르의 핵심적 메시지인 혁신을 장르의 규칙에 적용하는 순간 불황을 모르고 번식하던 자기계발 장르가 위기에 빠질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누구나 성공할 수는 없다. 현실은 냉혹하다.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면, 그것은 더 이상 성공이 아니다. 자기계발서는 성공을 보장하는 책이 아니라, 심리적 위안을 선물하는 책이다. 역설적으로 자기계발서의 독자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뿐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고도 성공했다. 성공에는 현실의 원리들이 적용된다. 재벌 2세의 아들은 아무리 낭비벽이 있어도 가난뱅이가 될 수 없다. 가난뱅이는 아무리 근검절약해도 아파트를 살 수 없다.
자기계발서는 ‘계급 법칙’을 숨긴다. 성공과 실패는 자기계발서의 논리 속에서는 삶의 태도의 차이에 따라 결정된다지만, 그 책이 놓여 있는 사회에서 성공과 실패는 계급 법칙을 따른다. 성공하도록 예정된 사람과 실패하도록 예정된 사람으로 나누어진 세계가 오히려 사실에 가깝다. 자기계발서의 관념 속에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는 돕지만, 현실에서 하늘은 돕도록 예정되어 있는 계급에 속한 자만을 돕는다.
현실의 계급 법칙이 던지는 질문 앞에서 “나는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자기계발서를 읽지만, 현실의 원리를 아는 영리한 사람은 자기계발서의 장르 규칙을 파괴하고, 차라리 자기계발서가 성공한 사람과 성공하지 못한 사람 사이에 파 놓은 넓고 깊은 이분법의 양쪽 언덕을 이어 계급 법칙을 완화하는 다리를 짓는다.
그것은 교육이다.
두 종류의 다리가 있다.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감정으로 지어진 다리이다. 동정의 다리는 성공의 언덕 위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경멸하는 냉혈인이 빼곡히 앉아 있는 성공의 언덕보다는 따뜻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정의 시선은 선해 보여도 본질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내려다보는 시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동정의 시선은 동정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처지로 자신은 절대 전락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의 것이다. 동정의 시선은 아무리 다듯해도 또한 위계적이다. 동정은 하지만 나는 저렇게 되지 않겠다.
동정의 다리에서 한계를 느낀 사람은 두 번째 공감의 다리의 설계도를 들여다본다.
실업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고 있는 ‘불우이웃’을 선의의 감정에 따라 동정의 시선으로 보는 사람과 달리, 타인의 고통에 공감을 느끼는 사람은 그 사람을 실패로 몰고 간 실업이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위협하는 보편적 위험이라는 인식을 놓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공감은 동정이라는 따뜻한 감정으로 냉혹한 현실을 잠시나마 가릴 수 있다는 낭만적인 태도와는 거리를 둔다.
동정의 다리 위에선 이따금 불우이웃 돕기 모금이나 자선바자회가 열리지만,
공감의 다리 위에선 복지라는 제도의 나무가 자란다. 공감이 복지를 감정으로 표현한 것이라면, 복지는 공감에 제도의 옷을 입힌 것이다.
개인적 성공은 소유한 승용차의 크기와 은행 잔고로 측정될 수 있겠지만, 사회의 성공 여부는 공감이 제도화된 복지의 크기와 넓이로 가늠할 수 있다.
하늘이 혹은 계급이 선택한 소수의 사람만 성공하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을 동정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특권을 독점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회가 홀로 성공하는게 더 좋다.
복지국가는 성공한 소수의 개인보다는 성공한 사회가 공공선에 가깝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성공의 단위는 하늘이 돕는 개인뿐이라는 오래된 사유의 관습과 이별할 때, 우리는 비로소 복지국가와 만날 수 있다.
그 나라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자기계발서가 그 나라로 가는 방법을 알려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기계발서가 그 나라로 가는 방법을 알려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기계발서는 읽을 만큼 일었다. 이젠 그 책을 덮고 한번 물어보자. 이건희의 성공은 자기계발서 덕택인지, 아니면 이건희 아버지가 이병철이었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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